이집트는 아프리카 대륙 동북부의 북위 20°∼ 30° 지역에 위치하며 세계 4대 문명의 발상지의 하나로서 고대부터 서양 세계의 문화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리스의 역사학자 헤로도투스(Herodotus)가 '이집트는 나일의 선물'이라고 표현했듯이, 주민의 대다수가 이집트의 중심부를 흐르고 있는 나일강 유역에 거주했고 그들의 문화를 발전시킴으로써 나일강은 이집트인의 정신적·물질적 생활의 중요한 원천이었다.
고대 이집트의 왕조사는 크게 고왕국(1-10왕조, B.C. 3400-2160년), 중왕국(11-17 왕조, B.C. 2160-1580 년), 신왕국(18-26왕조, B.C.1580- 525년)의 3왕국 시대로 나뉘고 이후는 페르시아를 비롯한 이슬람교의 외세의 지배를 받음으로써 찬란했던 이집트왕조사를 마치게 된다. 고왕국시대는 이집트의 창건기로 강력한 왕(paraoh)에 의해 사회체제가 확립되고 경제적으로도 안정된 시기였다. 이 시기에는 피라미드(pyramid)의 축조공사와 같은 대규모 노역사업이 많았다. 중왕국 시대는 어느 정도 번성했던 11·12왕조를 제외하고는 서아시아계 종족인 힉소스(Hiksos)족이 지배하여, 고왕국에 비해 신성왕위의 효력은 매우 미약해졌다. 그러나 경제적·문화적으로는 어느 정도 안정과 성숙의 단계에 접어든 시기였다. 신왕국 초기인 18왕조 때에는 영토가 시리아, 팔레스타인 등 지중해 연안과 메소포타미아(Mesopotamia)지역에 까지 이르는 등, 이집트의 최강성시대로 이집트 제국이라 칭했을 정도이다. 이 시기에는 전통적인 문화가 완숙의 경지에 들어갔음은 물론, 여기에 동방세계의 이질적인 문물이 전래되어 융합됨으로써 독특한 양상의 이집트 문명이 창조될 수 있었다.
이집트는 신성시된 국왕 파라오를 중심으로 한 절대적인 계급사회로 파라오는 태양신 라(Ra)의 구현체로서 신관·군사지휘관·지주 등의 권력을 겸비했고 그 권위는 절대적인 것이었다. 이집트 왕가는 그들 자신을 모두 신으로 여겨, 근친 결혼을 함으로써 왕가의 혈통을 계승해 나가고자 했으며 여기에 공신 등의 귀족과 각 신을 모시는 성직자가 합세하여 이집트의 지배계급을 이루고 있었다. 이들이 매우 사치스럽고 향락적인 생활을 누린 반면, 생산과 노동을 담당한 하층민과 노예들은 매우 비참한 생활을 했다.
헤로도토스가 말하기를 "이집트인은 세계에서 가장 종교적이다"라고 하였다. 그만큼 이집트의 문화는 종교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는데 이들이 믿는 다신교 사상은 경제·사회·정치면에서 지배적인 역할을 했다. 이집트인들은 영혼불멸의 종교관념으로 사후세계에 대한 믿음을 가졌으며 이 결과 거대한 피라미드와 분묘, 미라를 탄생시켰는데 분묘에서 발굴된 부장품은 분묘의 주인공들이 현세세상에서 사용했던 부장품들과 그들의 연대기, 내세생활의 동반자의 벽화등으로 장식되었다. 천체에 관한 신으로 태양신(Ra)은 가장 중요한 신앙의 대상이 되었으며 생과 사를 관장하는 신으로 나일강과 동일시된 오시리스(Osiris)와, 그의 누이이며 그와 결혼한 대지와 다산의 여신인 이시스(Isis)등이 신앙되었다. 이외에도 많은 신들을 숭상했는데 이러한 다신교사상은 거대한 신전의 건축물을 탄생시켰다. 이외에도 동물숭배는 여러 가지였으며, 소,양, 악어, 고양이, 사자 등이 그 대상이었다. 이러한 다신교 신앙은 주위의 상징적 자연물을 조형화하여 복식을 비롯한 모든 의장에 사용되었다.
Ⅰ. 이집트의 의상
1. 생활환경
고대이집트는 세계 4대 문명 발상지의 하나로서, 그들의 복식이 최초로 종합적인 문화의 성격을 갖추고 나타났다는 점에서 서양복식사의 기원으로 간주될 수 있다.
이집트는 북위 20℃∼30℃의 온난한 지역에 위치하며 그 중심부에는 나일강이 흐르고 있다. 그리스의 역사학자 헤로도투스가 '이집트는 나일의 선물'이라고 단적으로 표현했듯이, 나일강은 이집트인의 물질생활의 원천이었을 뿐 아니라 정신생활의 모태로서, 이들 양면의 총합인 복식문화도 나일강을 통해 이해될 수 있다.
이집트 주민의 대다수가 나일강 유역에 거주했기 때문에, 자연히 복식은 나일강 유역의 뜨겁고 건조한 아열대성 기후에 적응할 수 있는 방향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그들의 의복형은 신체의 일부에 간단히 걸치거나 전체에 헐렁하게 둘러입는 식의 밀착되지 않은 형태를 취함으로써 체열의 발산을 최대한 크게 할 수 있었다.
소재면에 있어서도 나일강 유역의 진흙의 산물인 마직 리넨을 주로 사용했는데, 이것은 얇고 가벼울 뿐 아니라 통기성, 흡습성이 좋아 그들의 기후풍토에 매우 적합했을 것이다.
이집트는 같은 시대의 다른 민족에 비해 장신구의 발달이 현저했는데 그것은 의복형이 단순하고 노출이 많아서 신체 자체에 장식을 하고자 하는 욕구가 컸기 때문이며, 또한 재료의 종류가 다양하고 양이 풍부했기 때문이다.
이집트의 뜨겁고 건조한 기후는 미이라(mirra)나 유물 또는 유적이 보존되기에 적합한 천연적 조건이었기 때문에 수많은 조상(彫像),벽화, 출토품 등이 그대로 보존될 수 있었다. 이러한 자료들은 이집트 복식 연구에 커다란 역할을 하고 있다.
고대 이집트의 왕조사는 이집트문화의 발전경로, 특히 복식문화의 발전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는데, 대략 3왕국 26왕조로 구분된다.
사회제도는 비교적 엄격한 계급사회를 형성하였고, 신격화된 왕인 파라오를 정점으로 그 밑에 신관, 귀족, 관리, 군인, 직인, 농민, 노예 순으로 계급을 형성하였다.
산업구조는 농업이 주였으며, 홍해, 지중해를 건너 시리아, 레바논과 교역하였다. 이집트는 특산물인 파피루스와 마를 수출하였고, 아프리카나 서아시아로부터는 금, 은, 동, 목재, 향료, 동물의 가죽, 타조 깃털 등을 수입하였다.
종교는 농업과 관계가 깊은 천체와 자연현상을 숭배하는 다신교였으며 그 중에서도 태양신인 라(Ra)가 가장 강력한 주신이었고, 또한 영혼불멸과 사후세계에 대한 그들의 믿음은 피라밋을 만드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고왕국(Old Kingdom) 1∼10왕조, BC 3400∼2160년◀
이집트의 창건기로 Menes왕이 창건하여 Memphis를 수도로 10왕조에 걸쳐 약 1000년간 계속되었다. 피라밋왕조라 불리는 3,4왕조시기는 강력한 Paraoh왕에 의해 사회체계가 확립되고 경제적으로도 안정된 시기였다. 이 시기에는 피라미드의 축조공사와 같은 대규모 노역사업이 많아 복식은 활동이 편한 단순한 형태가 주를 이루었던 것으로 보인다.
▶중왕국(Middle Kingdom) 11∼17왕조, BC 2160∼1580년◀
11,12왕조를 제외하고는 서아시아계 종족인 힉소스족이 지배하여, 고왕조에 비해 신성왕위의 효력은 매우 미약해졌다. 그러나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는 어느 정도 안정과 성숙의 단계에 접어들어 독특한 이집트풍이 성립되었다. 또한 동방과의 접촉으로 인해 이집트복식에서의 외래적 요소가 이때를 계기로 나타나게 되었다. 복식의 외형뿐 아니라 염색법, 직조법, 세공기술 등도 본격적인 진전을 보여 복식의 발달에 큰 역할을 했다.
▶신왕국(New Kingdom) 18∼30왕조, BC 1580∼525년◀
초기인 18왕조 때에는 영토가 시리아, 팔레스타인 등 지중해 연안과 메소포타미아지역에까지 이르는 등, 이집트의 최강성시대로 이집트제국이라 칭했을 정도이다. 이처럼 강력하고 유능한 왕들의 영화는 수도 테베와 텔 엘 아마르나(Tel el Amarna : Akhenaten왕 당시의 수도)를 중심으로 이룩된 거대한 건축공사에 잘 반영되어 있다. 즉 이 시기에는 전통적인 문화가 완숙의 경지에 들어갔음은 물론, 여기에 동방세계의 이질적인 문물이 전래되어 융합됨으로써 독특한 양상의 이집트 문명이 창조될 수 있었다. 당시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대상은 1922년 고고학자 카나본과 카터에 의해 발견된 투탕카멘(Tutankhamen, Tutankhamun)왕 분묘의 부장품 규모와 그 호화로움에서 충분히 엿보인다.
18왕조의 투탕카멘분묘의 벽화나 부장품에 사용된 다음의 상징적인 요소들을 살펴보는 것은 복식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직선 - 직선은 기하학적인 것을 좋아하는 이집트인의 국민성이 가장 잘 반영된 것이다. 이는 태양이 햇살, 또는 매일 동에서 서로 일정하게 운행하는 태양의 궤도를 상징한다. 의상의 주름, 갈라 스커트(gala skirt)의 햇살무늬 등은 이를 나타낸 것이다.
삼각형 - 나일강 하류의 평야인 델타(delta)를 상징하는 것으로 대표적인 예가 피라미드이다. 갈라 스커트의 앞늘어짐이 △으로 된 것과 왕의 머릿수건(klaft)모양 등은 이 같은 의미를 담고 있다.
원 - 태양을 상징하는데 아케나텐왕이 일륜신인 아톤을 유일신으로 주창한 이후 널리 사용된 듯하다.
로터스(lotus) - 하이집트의 대표적 식물로 영원한 생명을 상징한다. 식물문양의 기본을 이루어 장신구뿐 아니라 그릇, 벽화, 건축양식에 많이 사용되었다.
파피루스(papyrus) - 상이집트의 대표적 식물로 로터스와 함께 장식되는 경우가 많다.
독수리(vulture) - 상이집트의 신의 상징으로 상 하 이집트가 통일된 이후에는(BC 3100년) 우라에우스와 함께 왕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다.
뱀머리(uraeus) - 독수리와 함께 왕권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문양으로 원래는 하이집트의 신을 상징했다. 장신구에서는 우라에우스의 머리만을 유리상감을 입혀 많이 사용했고 왕의 가짜수염의 무늬도 우라에우스의 표피를 나타낸 것이다.
타조 깃털 - 고귀함을 상징하는 것으로 주로 머리장식이나 부채, 장신구, 향유병등에 사용되었다.
신성풍뎅이(scaravaeus) - 아케나텐왕 이후로 왕실의 장신구에 널리 사용되었는데 재생(rebirth)을 상징한다. 즉 왕이 내세에서도 같은 모습으로 살아 갈 것을 기원한 것이다.
눈 - 호루스(horus)신의 눈으로서 적군을 보는 투시안적인 눈을 상징하며 펜던트에 주로 장식되었다.
앙크(ankh) - 영원한 젊음을 의미하는데 왕의 의식용 장신구나 성체용기, 가구, 거울의 문양으로 투탕카멘의 분묘에서 가장 많이 발견되는 부호 중의 하나이다.
도리깨 - 풍작을 기원하는 것으로 농업이 주산업인 이집트에서 파라오의 주된 관심대상이 풍작이었음을 알 수 있다.
지팡이 - 지배와 통치로써 권위를 상징한다.
금(金) - 태양과 같은 색으로 간주하여 가장 고귀한 것을 상징했다.
2. 복식의 종류와 형태
(1) 개 요
: 남자들은 기본적인 의상으로 전기에는 로인클로스나 쉔티(shenti)를 입었는데, 후기에 들어와서는 로인클로스와 쉔티가 일종의 롱 스커트처럼 발전하고 그 위에 로브 스타일인 칼라시리스를 입었다. 왕은 이제까지의 기본형인 로인 스커트를 다체로운 허리끈 장식과 함께 칼라시리스 속에 그대로 입었다.
여자들은 몸에 꼭 끼며 유방에서 어깨끈이 달린 쉬스 스커트를 입다가 후기에는 드레이퍼리한 칼라시리스를 주로 입었으며 의상을 몸에 두르는 방법은 까다로운 규정이 없이 자유롭게 변화를 주면서 창의력을 발휘했다.
이집트인들의 복식은 왕족을 중심으로 한 권력표시의 상징이었으며, 노예계급의 의복은 거의 나체나 또는 띠 형태의 간단한 로인클로스로 한정되었다.
(2) 의 복
① 로인클로스(Loincloth) : 요의. 고왕국 초기에 왕에서 노예에 이르기까지 남녀 모두 착용했다.
가장 단순한 형태로 장방형의 천을 허리에 둘러 입었고, 고왕국 말기부터 후기로 갈수록 요의의 옷길이가 무릎이나 발목 길이로 길어지거나 허리 위 가슴 밑까지 올라간 것이 있으며 어깨를 덮는 형태로 크기가 커졌다.
옷감이 풍부해지고 외래의 영향을 받으면서 주름을 잡거나 장식을 하였고, 입는 방법도 다양해졌다.
쉔티(Shenti) - 일반 남녀가 입었던 로인클로스의 일종
킬트(Kilt) - 신왕국 이후 남녀공용으로 애용한 로인클로스의 변형으로, 롱스커트의 실루엣을 이룬다. 이 옷의 특징은 앞자락에 주름을 잡은 것으로, 길이는 무릎에서 발목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파뉴(Pagne) - 왕족의 남자들이 둘러 입었던 로인클로스, 쉔티, 킬트의 총칭이다. 즉, 일상생활이나 운동시에 입는 단순한 로인클로스에서 의식용의 킬트에 이르기까지 왕의 하의를 모두 포함하는 것이다.
쉔도트(Shendot)- 왕족의 남자들이 파뉴 위에 두르는 에이프런형의 장식 패널로 헝겊에 보석이나 여러 가지 색깔의 유리상감(유리가루를 녹여 풀로 붙이는 방법)으로 세공하여 입체감이 나게 만든 것으로 매우 정교하고 호화롭다.
트라이앵큘러 에이프런(Triangular Apron) - 쉔도트와 같은 장식적인 효과를 위해 착용한 에이프런으로 왕족의 남자들만 착용했다.
② 쉬스 스커트(Sheath Skirt) : 여자가 입는 옷으로 로인클로스와 비슷한 형태이나 장식적인 어깨끈이 달리고 길이가 발목까지 내려온다. 고왕국 때부터 입었으며 중왕국 때는 메소포타미아의 영향을 받아 문양과 색채가 들어가고, 신왕국 때는 좀 더 장식이 들어갔다.
③ 튜닉(Tunic) : 남자의 로인클로스와 같이 여자의 가장 기본적인 의복이다. 튜닉은 그 모양에 있어서 여러 가지가 있으나 가장 일반적인 형은 직사각형의 천을 접어 목둘레선을 T자나 원형으로 자른 것이다. 이것은 양쪽 진동선 밑에서 단까지 꿰매어 몸에 밀착시킨 형태로 활동이 불편할 정도였다. 신왕국에 와서는 활동하기에 편하도록 오른쪽 어깨부분을 없애고 왼쪽 어깨에만 걸치도록 변형된 것도 있었다.
④ 칼라시리스(Kalasiris) : 남녀모두가 착용했으며 신왕국때 많이 입혀진 로브형식의 의복이다. 구성법은 길이가 입는 사람의 어깨에서 발목길이의 두배, 폭은 양팔을 벌려서 양손목간의 길이가 되는 천을 반으로 접어 중앙에 머리가 들어갈 곳을 뚫어 착용했다.
⑤ 하이크(Haik) : 신왕국시대부터 상류계급의 남녀가 입었던 의복이다. 소아시아 지방에서 유래한 것으로, 이중으로 몸에 걸치거나 두르는 숄 형태이다. 칼라시리스 위에 걸쳐 입기도 하고 양 어깨가 덮히도록 앞에서 매어 착용했다.
(3) 머리장식
: 남녀 모두 짧게 깎거나 삭발한 후 가발을 썼다. 가발은 종교적인 의미의 청결과 기후 조건에 의해서 생겨났다. 초기의 가발은 각이지고 길이가 짧은 단발형이던 것이 후기로 갈수록 폭이 넓어지고 길이가 길어졌다. 신왕국 이후의 것은 가발에 금, 구슬, 리본, 꽃 등으로 장식하였다. 가발의 색은 대부분이 검정색이고 짙은 청색이나 황금색으로 물들이기도 하였다.
이집트인은 짙은 화장과 가발을 즐겼는데 특히 눈 주위에 녹청색 화장료를 칠한 것은 곤충의 접근을 방지하고 가발과의 조화를 이루기 위함이었다.
쉔트(pshent) - 상 하 이집트의 통일을 상징하는 왕관으로 관의 끝이 높고 둥근 것은 상이집트의 흰색관이고 끝이 뾰족한 형태의 붉은 관은 하이집트의 것으로 두관을 합친 형태이다.
크래프트(klaft) - 왕과 여왕은 청색과 황색의 줄무늬가 있는 머리수건을 머리에 둘러 쓰고 양옆자락을 앞으로 늘어뜨렸다.
(4) 신 발
: 장신구나 머리쓰개의 발달에 비해 신발의 발달은 극히 완만했다. 더운 기후와 사막, 강이라는 자연환경 속에서 극히 간단한 샌들이 일부 상류층에 그것도 중왕국 이후부터 착용되었다. 이것은 종려나무 섬유나 파피루스, 야자수 잎의 섬유, 갈대, 양가죽 등으로 만들어졌고, 짜는 방법을 바꾼다든지 천으로 가장자리를 두른다든지 하는 등, 다소의 변화가 있었다.
신왕국시대 때 왕과 귀족층의 샌달은 앞부리가 뾰족하고 위로 올라간 형태가 되었다. 투탄카멘왕의 샌들은 금과 보석으로 장식되었다.
(5) 장신구
: 이집트인은 흰색의 요의나 칼라시리스와 구리빛 피부색과 대비, 화려한 원색의 장신구와 의복과의 조화가 독특한 복식미를 나타내었다.
금속세공, 칠보세공이 발달하여 장신구에 많이 이용되었고 특히 금은 태양을 상징하고 영혼불멸이라 믿어 많이 사용하였다. 이 대표적이고 그밖에 각종 펜단트(pendant), 펙토랄(pectoral) 장식, 가슴장식의 일종으로 펜던트와 같은 장식과 팔지, 발지, 반지 등이 있다.
(6) 색 채
: 빨강, 노랑, 파랑, 푸른색이 섞인 녹색계열의 색채 등이 사용되었지만 흰색이 지배적이었다. 중왕국 이후 메소포타미아의 영향을 받아 점차 색채와 문양이 가미되었다.
이집트인은 단순한 색채의 복식에 화려한 장신구를 걸쳐 조화를 이루었다.
(7) 문 양
: 이집트의복은 소재의 특성상 흰색이 지배적이었으나, 중왕국 이후 문양이 사용되기도 하였으며 대부분 기하학적 문양으로 나타냈었다. 이집트문양은 추상과 사실이 공존, 조화를 이루는 풍부한 상상력과 기하학적 재능으로 후대의 장식예술에 큰 영향을 미쳤다. 문양의 종류는 다양하여 기하학문, 동물문, 식물문, 상형문자문 등 여러 가지 문양의 종류가 모두 나타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하학문에는 직선을 기본으로 하는 사선문, 기치문, 귀갑문, 십자문, 완자문, 곡선을 기본으로 하는 파도무늬, 소용돌이 무늬, 원무늬, 고기비늘 무늬, 점을 이은 점렬문 등이 있다.
동물문에 사용된 동물은 수소, 자칼, 뱀, 백로, 매, 하마 등으로 여러 신들의 상징동물로 사용되었으며 정확한 묘사와 균형 잡힌 구성으로 표현되었다.
이집트의 식물문 중에서 가장 중요한 장식요소는 로터스와 파피루스를 들 수 있다. 꽃과 꽃봉오리의 옆과 평면을 벽면에 묘사하거나, 주초 장식에 사용하였다. 상형문자는 이집트 고유문자로 오늘날에는 이집트를 상징하는 문양의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결론
복식은 인간의 생활 속에서 생겨 나와 생활과 공존하는 것이므로 인간의 의지와 감정을 가장 잘 형태화 시키면서 그 당시의 생활상과 사회상을 가장 잘 반영한다. 따라서 의복은 자연환경을 포함한 각 시대의 정치체제, 경제상태, 사회조직, 예술양식, 종교관념 속에서 인류의 정신활동의 발자취를 나타낸 문화사의 중요한 요소이다. 이집트는 뜨겁고 건조한 기후의 영향으로 체온의 발산을 최대화시키기 위하여 Linen 천을 몸에 헐렁하게 둘러 입는 drapery 형태의 의복을 착용하였다. 이러하듯 고대에도 날씨와 기후의 영향을 살펴 의복을 만들어 입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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